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원제 <Norwegian Wood>. 구구절절히 설명할 필요도 없이, 80년대 말 이후 한국 젊은이들의 '신(新)감성'을 휘잡아버린 책이다.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책으로 대번에 초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으며, 이후 수십권의 하루키 책이 번역되면서 가장 많은 번역서를 거느린 작가 중 하나로 부상했다.

주인공(이제는 하루키의 페르소나가 된 와타나베)은 친구의 연인이었던 나오코와 사랑에 빠진다. 그러나 순수한 사랑으로도 그녀 가슴속 깊은 곳의 빗장이랄까, 우울은 치료되지 않는다. 그녀는 요양소에 가게 되고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관계는 가까와질듯 가까와질듯 하면서도 파고들지 못한다.

두 사람의 사랑이야기 주변에는 와타나베의 활달한 친구 미도리, 요양소에서 알게 된 레이코 여사, 와타나베의 기숙사선배 나가사와와 그 여자친구 등이 있다. 이들이 빚어내는 변주는 젊음 특유의 반짝거림을 갖고 있지만 자신들은 정작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. 그저 느끼는 것은 목적모를 막막함과 상실의 느낌 뿐이다.

하루키를 널리 알린 이 책은, 그러나, 하루키의 문학세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. 책의 함량이 떨어져서가 아니라, 하루키의 주된 특성들이 도드라지게 나타나있지 않기 때문이다.

일상을 한참 벗어나는 모험속에 느닷없이 던져지는 주인공이 그 일탈을 통해 (자본주의 속 개인으로 살아간다는) 삶의 의미를 되씹어보는 것이 전형적인 하루키 소설의 구도이다. 따라서 아주 기상천외한 상상의 주인공들이 등장하기도 하며, 인과를 정확히 알수없는(알 필요도 없는)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.

그에 비해 이 두꺼운 사랑이야기는 평이하고 보다 현실적이다. 하루키 자신은 이 책을 '사실주의(리얼리즘)에 철저히 입각해 썼다'고 밝히고 있다. 물론 하루키에 이르러서는 리얼리즘조차도 다르게 느껴지고 말지만 말이다.

비틀즈의 노래제목 'Norwegian Wood'가 원제이나 이름을 바꾸어 소개되었다. 제 제목을 되찾은 새 역서도 여럿 출간되었지만 분위기를 잘 포착하고 있는 <상실의 시대>도 나쁘지 않은 제목이다. -김명남(2001-09-19)